오스트리아 빈에서 음악가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그중 하이든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알아봅니다.
하이든의 성장 이야기와 전성기의 활약상, 인자했던 파파 하이든의 모습에 대해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음악가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게 된 음악가를 여러분들도 좋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음악의 도시 빈에 대해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음악도시로 유명합니다.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면 곳곳에서 클래식 음악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빈은 과거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으며 그 유명합 합스부르크 가문이 있던 곳입니다.
* 신성로마제국은 962년부터 1806년까지 독일 국가 원수가 황제 칭호를 가졌던 시대의 독일제국을 말한다.
당시 수많은 음악가들이 빈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고, 우리에게 익숙한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빈을 대표하는 음악가입니다. 하이든, 슈베르트, 브람스 또한 빈을 배경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앞에서 포스팅한 안토니오 비발디는 말년에 빈으로 이동하였으나 쓸쓸하게 사망하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로 이름을 날리던 비발디의 쓸쓸한 죽음이 궁금하시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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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어린시절을 지나 평온했던 음악가의 삶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 마차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도 음악을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는 않아 음악에 소질이 있는 하이든을 먼 친척에서 맡기게 됩니다. 하지만 하이든은 아동학대와 유사한 대우를 받으며 악기 연주를 배우다가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슈테판 성당 부속 합창단 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학교는 무상교육이었고 오디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였는데, 하이든의 음악적 재능으로 입학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합창단원이 되어 왕궁에 출입하게 되면서 열심히 성장하던 하이든은 열여덟 살에 변성기가 찾아와 합창단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그 이후 밥을 굶을 정도로 가난을 겪으며 수녀원 성가대 지휘, 피아노 반주, 성악 교습, 행사 연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 하이든이 퓌른베르크 남작에게 소속되어 다른 세명의 연주자와 협주를 하곤 했습니다. 하이든과 세명의 연주자는 각각 바이올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연주하였고 이러한 구성의 악기 연주를 위해 하이든이 작곡한 곡들이 현악 4중주라는 장르를 완성하게 합니다.
이후, 형편이 나아져서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결혼을 하였으나 음악에 관심없던 아내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자식도 두지 않고 지냅니다. 하이든은 이후 헝가리 귀족 출신의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소속되어 남은 평생을 함께 하게 됩니다. 하이든의 고용주인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음악을 특히 사랑하였고 막대한 권력과 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된 하이든이 다행스럽습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헝가리의 베르사유 궁전이라고 불리는 화려한 궁전을 짓게 되는데 여기에는 오페라 하우스도 두 곳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하이든은 30여 년간 경제적 안정 속에 많은 작품을 남깁니다. 수많은 교향곡과 가곡, 실내악, 오페라, 관현악곡 등 누구의 간섭도 없이 독보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하이든의 명성이 높아지고 24살이 어린 모차르트와도 서로 교류하며 존경하는 사이가 됩니다.
하이든의 고용주였던 공작이 사망하고 난 뒤, 하이든은 연금은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게 대우받지만 오케스트라가 해산되어 자유의 몸이 되어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을 하며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고 빈으로 돌아와 '천지창조'라는 대작을 작곡합니다. 이후 합창단, 오케스트라, 독창을 포함하는 '사계' 를 작곡하였습니다.
* 비발디의 삭는 바이올린 협주곡이고 하이든의 사계는 성악부분이 두드러집니다.
교향곡의 아버지, 파파하이든
하이든은 수많은 교향곡을 써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지만 파파하이든이라는 더 멋진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이든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에피소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하이든을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이든이 30년 동안 섬겼던 에스테르하지 공작이 여름궁전에 휴가차 머물며 음악 연주를 즐겼는데, 휴가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연주자들이 집에 가지 못하고 가족들을 그리워하자 하이든이 고민 끝에 '고별 교향곡'이라는 곡을 써서 연주합니다. 아다지오의 느린 템포로 끝나는 교향곡의 자기 파트 연주를 마친 연주자들이 하나씩 촛불을 끄고 악기를 들고 퇴장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공작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아랫사람을 헤아려주는 멋진 하이든의 에피소드를 들으면 누구나 하이든의 팬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든이 이처럼 배려심 많은 따뜻한 음악가가 된 데에는 어렵게 자란 성장과정이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파파하이든은 음악가로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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