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 2022. 11. 10. 22:50

(클래식거장) 안토니오 비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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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 (1678~1741)

 

바로크시대 가장 유명한 음악가 중 한 사람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이탈리아 태생, 1678.3.4~1741.7.28, 63세)

바로크 음악은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는 1600년경부터 1750년 정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보통 바로크 음악이라고 하면 바흐와 헨델을 많이 떠올리는데 비발디 또한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유명한 작곡자 중 한 사람이다.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데 비발디는 바흐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음악의 큰아버지 또는 음악의 할아버지로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빨간 머리 사제

 

비발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아버지는 이발사이기도 하면서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산마르코대성당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뽑히게 되며 허약하게 태어난 비발디에게 성당에서 사제가 되도록 권유한다. 이때 머리색 때문에 빨간 머리 사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몸이 약했던 비발디는 미사를 집전하며 가슴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져서 사제로 계속 일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아버지에게 배운 바이올린 실력이 뛰어남을 인정받아 베네치아의 한 음악원에서 아이들의 음악교육을 맡게 된다.

 

* 빨간 머리 사제라는 별명은 뒤에 나오는 피에타 음악원의 여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바이올린 교사이자 작곡가

 

비발디는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라는 베네치아의 병원 부속 음악원에서 음악에 재능있는 아이들을 교육하게 되었으며 음악에 전념할 수 있었다. 비발디는 30년 이상 이곳에서 일을 하며 음악원의 학생들을 눈부시게 성장시켰고, 외국에서도 연주를 듣기 위해 찾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는 이곳에서 많은 협주곡을 작곡하였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아는 '사계'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사계(Le Quattro Stagioni) : 1725년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 작품번호 Opus 8, No. 1-4 

원래 1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이루어진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로 출판되었는데, 사계절을 묘사한 처음 네 곡이 인기를 끌면서 따로 분리되어 사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각 곡은 3악장으로 되어있는데, 당시 4악장이 주류였던 것을 비발디에 의해 3악장 형식이 정착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은 다시 빠르게 연주가 되며 3악장으로 이루어진 네 곡이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제목이 붙여 각 계절을 묘사한다. 봄은 따뜻한 봄과 새들의 노랫소리, 나른한 풍경과 양치기의 피리 소리 등을 표현하고, 여름은 뜨거운 태양, 비와 천둥과 번개를 떠올리게 한다. 가을은 수확의 기쁨이나 포도주를 마치며 춤을 추고 사냥하는 풍경을 담고 있고, 겨울은 눈보라와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사계에는 소네트라고 불리는 짧은 시 구절이 계절마다 붙어있었으며 곡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사계는 표제음악*의 한 예로 볼 수가 있다.

 

*표제음악 : 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예술 음악의 한 종류

 

 

오페라 그리고 쓸쓸한 말년

 

작곡가로 인정받은 비발디는 당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져다줄 수 있는 오페라 작곡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첫 번째 오페라인 오토네 인 빌라가 성공하고 오페가 극단 운영도 하며 이탈리아 전역에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한 소프라노 가수와 염문에 휩싸여 구설에 올랐고 교회로부터 문책당하고 대중도 그에게서 돌아서는 등 말년에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저 여가수와의 염문설로 정확히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닌 듯 하다. 안나 지로라는 가수인데 추측으로 나이가 10대에 불과할 정도로 어렸고, 친언니가 매니저 역할을 하듯 안나 지로를 돌보며 비발디의 천식 등 지병 수발도 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아마 좋지 않은 소문이 났을 것이고 당시 경쟁하는 음악가들에 의해서 소문이 퍼져나갔을 수도 있었겠다. 과거의 일은 현재로서는 추측할 뿐이니 아쉽기는 하다. 여학교 음악교사로서 크게 문제 없이 지내온 비발디였기에 안좋은 소문을 일축하는 흐름도 있는 것 같다. 비발디는 말년에 이탈리아에서 인기가 없어지자 자신의 팬이었던 신성로마 제국의 카를 6세를 믿고 빈으로 이주를 하였다. 하지만 비발디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를 6세가 바로 사망하고, 그도 곧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빈민 묘지에 묻혔다가 이후 재개발로 묘지조차 사라졌다고 한다. 

 

 

[더하기]

 

사실, 음악의 아버지, 음악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실제 그들이 살아있을때 불린 호칭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음악가와 관련된 책을 읽어보면 훌륭한 성품의 하이든이 '파파'라는 호칭으로 불리었지만 바흐나 헨델이 당대에 어머니, 아버지로 불렸다는 내용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후대에 와서 그들의 음악적 성취나 평행이론같았던 동시대의 두 음악가를 표현하기 위해 좋은 호칭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father of music, mother of music 이라고 구글에서 치면 바흐나 헨델이 나오기도 하는데 the greatest composer로 소개가 되며, 어떤 사이트에서는 드뷔시가 음악의 아버지로 표현되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단순히 피아노가 좋아서, 클래식이 편해서 이것저것 찾아 읽고 듣고 보고 한 것이라 내 생각도 많이 담겨있다. 유독 작곡가의 삶이 소설같기도 하고 짧지만 불꽃같거나 파란만장한 경우들이 많아 내가 즐겨읽고 또 정리해두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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